김진국 인터뷰
김진국 인터뷰
"위스키 한 잔 인문학 한 장"
위스키와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책에서 ‘우연한 한 모금이 동반자가 되기까지’라고 표현하셨는데, 작가님의 '인생 위스키'를 만난 순간이 궁금합니다.
저의 첫 위스키는 벨즈(Bell's)입니다. 그전까지는 주로 무색무취의 보드카를 많이 마셨는데, 처음 이 위스키를 마셨을 때 위스키에 향과 풍미와 색깔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습니다.
영국에서 20년간 50여 곳의 증류소를 찾아다니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증류소는 어디인가요?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도 들려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정류소는 로열 로크나가 증류소와 글렌파클라스 증류소인데요. 로열 로크나가 증류소는 위스키를 잘 모를 때 간 첫 증류 투어였기 때문에 기억에 남고요. 글렌파클라스 증류소는 어느 정도 위스키를 알게 된 다음에 가서 더 재밌었습니다. 위스키 증류소에 가면 모든 과정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증류소 특유의 분위기가 있고, 증류소에서만 파는 한정판 위스키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맛보고 사 오는 재미가 있습니다.
위스키 '입문서'나 '가이드북'은 많은데, 왜 '인문학'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하셨나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책에 이런 내용을 썼습니다.
‘위스키는 지식이기 이전에 경험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지식이다. 역사를 알면 한 잔이 더 깊어지고 문화를 이해하면 맛이 더 풍성해진다. 과학을 알면 향이 더 선명해지고 철학을 생각하면 의미가 사색이 된다.’
이 문구가 질문에 가장 맞는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위스키는 단순히 술의 여행을 넘어서, 인문학으로 가는 여정을 위한 매개체로서 역할하고 있습니다. 위스키를 통해 역사, 문화, 시대의 흐름 그리고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위스키 한 잔 인문학 한 장>이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기존에 있는 책들은 주로 위스키 가이드 책이 많습니다. 주로 어떻게 마시는지, 어떤 걸 추천하는보다는 새로운 각도에서 위스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위스키를 모르는 사람도, 위스키를 잘 아는 사람도 이 책을 통해서 위스키를 좀 더 재미있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요.
책에서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 《기생충》까지 다양한 예술 작품 속 위스키를 분석하셨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위스키 장면'은 무엇인가요?
책에는 나와 있지 않은데요, <오징어 게임> 시즌 2에 부대장 박희순 씨가 올드 풀트니 18년을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프런트맨 역할인 이병헌 씨는 글렌알라키 21년 캐스크 스트렝스를 마시고요. 재미있는 점은 계급에 따라서 마시는 위스키의 숙성 기간이 다르다는 겁니다. 프런트맨은 계급이 더 높기 때문에 더 좋은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그 장면에서 프런트맨이 모니터 화면을 여유 있게 바라보면서 글렌알라키 마십니다. 그런데 나중에 핑크 가드 노을(박규영)이 나중에 그 방에 들어가서 그 위스키를 종이에 불을 지르는 데 쓰죠. <오징어 게임>에서 위스키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르구나, 어떤 사람은 위스키를 단순히 불을 지르기 위한 알코올로 쓰고 어떤 사람은 위스키를 음미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하이볼로 위스키에 입문한 2030세대가 많습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 분들에게 어떤 위스키를,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라고 추천하시겠어요?
위스키를 시작하는데 정답은 없고, 편안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바에 가서 자신의 취향을 말하고 바텐더를 통해서 위스키를 소개받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위스키를 접할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스키를 하이볼로만 드시는 분들은 니트(Neat, 위스키 원액 그대로 마시는 방식)로 마시기에는 굉장히 독하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위스키를 꼭 니트로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한테 좀 독하다 싶으면 물을 타서 마시는 미즈와리 방식 등 자신한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위스키는 스트레이트로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만의 위스키 음용 철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답은 없습니다. 편할 대로 하시면 됩니다. 어떤 위스키는 니트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기도 하고요. 또 어떤 위스키는 얼음을 타서 온더락으로 마실 때 더 풍미가 좋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해봐야 아는 거죠. 몇몇 위스키는 니트로 먹었을 때 떫은맛 같은 거슬리는 맛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온더락으로 타 마실 때 희석되기도 하거든요. 오히려 단맛이 강화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꼭 스트레이트로 마실 필요는 없다는 거죠.
초보자 입장에서는 많이 마셔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로 해서 한번 마셔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스트레이트로 맛있는 위스키는 어떤 게 있고, 언더락으로 맛있는 위스키는 어떤 게 있나요? 왜 그렇게 마시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저는 보통 피트 위스키, 쉐리 위스키 마실 때는 니트로 많이 마시고요.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실 때는 온더락으로 많이 마시는 편입니다. 그리고 그밖에 저숙성 위스키들은 특유의 알코올 부즈(혀가 아리거나 알코올이 튀는 느낌)가 느껴지기도 하고, 오크통의 맛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얼음에 타서 먹으면 희석되기도 해요. 저는 피트 위스키를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는 것도 좋아합니다. 주로 식당이나 레스토랑 바에 가면 짐빔이나 산토리 가쿠빈으로 하이볼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요. 가장 유명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의외로 마시다 보면 피트 위스키가 하이볼하고 잘 어울리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단맛이 있는 탄산수보다는 약간 드라이한 것이 피트 위스키 하이볼을 만들 때 더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
120곳이 넘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방문하시며 페어링을 연구하셨는데, 한국 음식 중 위스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은 무엇인가요? 겨울철 제철 음식과의 페어링도 추천해 주세요.
이번에 2026년 미슐랭 코리아가 발표됐거든요. 조승현 셰프님의 레스토랑 ‘산(SAN)’이 올해 처음으로 별을 받았어요. 거기서 한치 숙회를 먹었는데 위스키랑 굉장히 잘 어울리더라고요. 또 제가 자주 가는 단골 레스토랑 중 하나가 김희은 셰프님이 해방촌에서 하시는 ‘소울’인데요. 거기에 ’미세스 김전복’이라는 디쉬가 있는데, 위스키랑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파인 다이닝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한식, 대부분의 고기들은 대부분 위스키랑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고기 외에는 쉐리 위스키나 버번이 상대적으로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곶감과 많이 먹기도 합니다. 한국에만 있는 디저트죠. 단맛도 있어서 어느 위스키에도 잘 맞는 편이고 크림치즈를 얹기도 해요. 겨울철에 저는 주로 해산물을 많이 페어링하거든요. 생과일이라든가 멍게 이런 것들이 피트 위스키랑 잘 어울립니다.
한국의 위스키 문화가 '보여주기 좋은 병' 중심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위스키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성숙해 가길 바라시나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위스키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소주에 있다고 보거든요. 소주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모든 술이 다 비싸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소주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소주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사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술이 다 비싸거든요. 그래서 그게 좀 아쉬워요.
또 하나는 한국에 아직 콜키지 문화가 정착이 많이 안 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불과 한 10년 전만 해도 콜키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레스토랑도 굉장히 많았어요. 그런데 해외에서는 집에서 편하게 술 한 잔 가져가서 마시는 게 흔하거든요. 또 거기서 그걸 다 마시지는 않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술을 가져가면 한 병을 다 비워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병을 다 비우는 게 아니라 음식과 페어링하면서 한두 잔 즐길 수 있는 정도, 과음이 아니고 즐기는 데 좀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와인이 콜키지 되는 곳은 많은데, 위스키가 콜키지 되는 레스토랑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습니다. 콜키지 문화도 좀 더 대중화가 돼서 누구나 쉽게 집에 있는 위스키를 가져와서 한두 잔 정도는 마실 수 있는 그런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위스키를 "취향을 넘어 삶을 사유하는 언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작가님에게 위스키란 어떤 존재인가요?
우연히 만났고요. 위스키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알았고, 그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에게 위스키는 제 주변 사람들과 저를 이어주고, 또 그 사람들과의 추억을 간직해 주는 기억이랄까요? 책에도 쓴 내용인데, 예전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추억이 생각나더라고요. 당시에 만났던 친구들이나 어떤 사회적 현상 같은 것들이 기억나는데, 위스키를 마셨을 때 누구랑 있었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하게 해주는 좋은 추억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권도 함께 소개해 주세요.
국내에 위스키 책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수십 권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 위스키 책들이 다루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과연 위스키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1권은 위스키와 경제, 역사, 문화, 이런 것들을 다루고 있고, 2권에는 좀 더 실용적인 내용을 담았는데요. 위스키를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사야 하고,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썼습니다.